≪기획특강시리즈≫

13호

≪기획특강시리즈≫

교회음악가의 직책문제 (I)

홍정수 교수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현재의 내 경제 형편은 약 700탈러(화폐단위) 정도이며 평상시처럼 시체가 많이 생기면 일에 따른 부수입도 그에 비례하여 상승합니다. 그러나 깨끗한 공기탓에 수입이 떨어져 작년의 경우, 평상시만큼의 시체가 없어 100탈러의 부수입이 감소되었습니다...." - 1730년, Johann Sebastian Bach

"이제 우리는 도식화 (圖式化)되고 비대화 (肥大化)하는 - 물론 양적 (量的), 질적 (質的), 경제적 (經濟的)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 우리 주변의 성가대를 고착 (固着)된 그 상태에서 탈피 (脫皮)시켜 안으로는 참된 신앙고백이 울려 퍼지고 밖으로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값진 하나님의 달란트를 무상 (無償)으로 투자하여 온전한 복음에 접하지 못하는 내 민족, 나아가서는 동남아와 세계선교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 1977년 최시원

위에 인용한 J.S. Bach의 글은 그가 학창시절의 친구 에르드만 (Erdmann)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당시 J.S. Bach는 45세의 나이로 라이프찌히 (Leipzig)에서 칸토르(Kantor: 교회음악가)로 일하고 있었다. 이 편지를 쓸 때의 상황은 이렇다. 교회부속 학교가 학생들에게 합창연습시간을 주지 않아 성가대의 수준이 나빠졌다. 학교측은 그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시켰다. 여기에 J.S. Bach는 항의를 했으나, 학교측은 이를 듣지 않고 그에게 어떤 벌칙을 가하려고 작정하여, 처음에는 그가 학교에서 담당하는 라틴어 과목을 저급학년에게만 가르치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가 그에게 계속 같은 봉급을 지급해야 했으므로, 학교측은 J.S. Bach의 감봉을 결정했다. 위의 편지는 이러한 처지에서의 J.S. Bach가 깊은 절망 가운데서 쓴 글로서, 친구에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말과 함께 거기에 자신의 경제 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인용문 중에는 시체와 수입을 연관지어 말하고 있다. 이는 당시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장례식이 있으면 거기서 연주를 하고 부수입을 얻었는데, 이것이 줄어들어 가계가 어렵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위의 편지 외에도 J.S. Bach의 남아 있는 편지 가운데에는 작센의 영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 (Friedrich August I)에게 라이프찌히 (Leipzig)대학의 예배음악을 담당하는 보수를 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런 이유로 J.S. Bach가 탐욕스럽다는 비난을 받은 일이 있다. 알베르트 슈바치쪄 (Albert Schweitzer)는 이러한 비난에서 J.S. Bach를 보호한다. 그는 J.S. Bach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러했으리라고 설명하며, 또한 J.S. Bach가 친구들에게 후하게 대한 것을 강조한다. 물론 여기에서는 J.S. Bach의 실상보다 그를 보호하려는 슈바이쪄의 견해가 더 우세하다. 사실상 따져보면 바하의 권리주장은 슈바이쪄의 과잉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굴욕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고, 약속된 보수가 나오지 않아 이에 대한 수정을 요청한 것 뿐이다. J.S. Bach의 경제적 조건은 이러한 일시적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망할 때에는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이는 J.S. Bach가 맡은 업무량으로 보아 당연한 것이다. 그의 업무는 다음과 같다.: ① 토마스 (Thomas) 교회학교 라틴어 교사 ② 학교 합창단과 합주단의 지휘자 ③ 니콜라이 (S. Nicolai)교회음악담당 ④ 토메 (S. Thomas)교회 음악담당 ⑤ 새교회 (Neukirche) 음악담당 ⑥ 베드로 (S. Peter)교회 음악 담당 ⑦ 라이프찌히 (Leipzig)대학교회 음악담당, 이 외에도 장례식, 결혼식 등 허다한 행사를 위해 일을 해야 했고 작곡하는 시간도 내야 했다.

두 번째의 인용문은 현재 한국 교회 목회자의 발언이다. 이 글은 여러 모로 전형적인 면이 있고 그 내용은 이상적이다. 여기에는 보편적으로 듣는 "내 민족", "동남아", "세계민족"의 큰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들과 교회음악을 '선교'라는 끈으로 맺어주고 있다. 이것을 위한 방법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달란트를 무상 (無償)으로 투자하여"라는 부분도 성가대에 관한 목회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으로 여겨진다. 아마 "무상 (無償)으로 투자하여"라는 말은 매우 좋은 의도로 쓰여졌으리라 생각된다. 즉, 모든 좋은 것은 값이 없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순수한 봉사적 자세를 요구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에 J.S. Bach와 같은 태도는 크게 이질감을 불러 일으킬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J.S. Bach가 원했던 것처럼 보수에 따라 직책을 이리저리로 옮기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결코 칭찬받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못한 것까지 부담시켜 비난하는 것 또한 부적당하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는 동역자의 생활에 대해 무관심하다. 목사와 부목사와의 생활간격은 물론이거니와 성가대 지도자를 동역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J.S. Bach는 교회에서 칸토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직책의 명칭이 아닌, 기능적 명칭으로 "지휘자"라는 말이 사용된다. 교회음악의 발전적 전망을 하는데 있어서도 "민족" "동남아", "세계" 등의 거대한 집단을 위한 것이지 구체적인 자기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언어의 습관은 한국사회에서 매우 일반화 된 것으로 그 뜻을 숙고함이 없이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J.S. Bach의 입장은 이와 반대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이러한 두 개의 대립적 태도는 쉽게 동양적 (단체중심적)인 것과 서양적 (개인중심적)인 것으로 분류해 버릴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 역시 숙고함이 없이 하는 피상적인 언어습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꼭 그렇게 행동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인 것은 물론이며, 개인적인 이익추구가 꼭 단체적인 이익과 대치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했던 J.S. Bach가 그 누구보다도 세계의 교회음악에 공헌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다.

J.S. Bach에게 고통을 주었던 학교 당국자들은 그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J.S. Bach가 단순한 문제거리였다. 사실 J.S. Bach도 자신의 크기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학교나 교회의 직원으로 남은 것이 아니고 음악사의 중심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J.S. Bach가 문제거리였던 것처럼 한국의 교회 안에서도 문제거리의 지휘자가 있을 수 있다. 각양각색의 수많은 지휘자가 있다. 양적 (量的)인 면에서 한국교회의 성가대와 지도자수에 비교할 만한 곳은 세계적으로 없다. 이러한 양적인 비대는 불가피하게 일반 음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한국 양악계 (洋樂界)의 초창기는 거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 이는 당시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국사회는 음악인을 천시하여 음악을 직업으로 갖는 것은 숙명이지 선택이 아니었다. 즉, 당시 궁중악사나 떠돌이 창자 (唱者)들은 세습 또는 차출되었으며, 주로 사회적 여건 때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국 전통 음악에 종사한 사람 중 많은 수가 사회제도가 바뀔 때 종래의 직책을 버리고 잠적하고 말았다. 이러한 사회환경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용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별로 절실히 못 느끼는 것이지만 당시의 음악지망생은 가족과 분쟁을 각오해야 했었다. 이 때 교회는 음악학도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건과 가능성을 제시했다. 즉, 찬송이 예배의 일부가 되어 음악하는 사람이 필수적이었고 음악인을 천시하여 따돌리는 습관도 없었다. 또한 기독교계의 학교는 이들에게 교사의 직책을 제공하여 음악인의 사회적 신분을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물론 이러한 공헌은 당시 사람들이 별로 느끼지 못한 것이었으나 그 결과는 오늘날에 뚜렷하게 불 수 있다. 이렇게 교회가 한국의 음악계에 공헌하는 것은 오늘날도 지속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 숫자적으로 이를 명기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음악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절대 다수가 신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일을 교회는 잘 모르고 있다. 마치 라이프찌히시가 J.S.Bach의 가치를 모르고 있듯이 한국교회는 한국음악계에 미치는 자신의 영향력에 무지하다. 이 무지 때문에 교회는 유능한 음악적 일꾼을 놓치고 만다. 왜냐하면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직책을 교회가 마련해 주지 않아 음악을 업으로 하는 다른 자리로 떠나고 말기 때문이다. 교회음악을 한다고 해도 정신을 쓰지 않는 가벼운 업무로 남고 만다. 그래서 아직도 교회 음악활동의 내용은 초창기와 거의 다름이 없는 양상을 띠고 있다. 즉,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찬송가는 매우 적고, 성가대가 부르는 성가의 대부분은 아직도 외국인의 것인데다 이것 또한 질적으로 양호한 편이 못된다. 우리가 하는 작곡은 이보다도 못한 실정이다. 이의 시정을 위해서는 전문인이 요청된다. J.S. Bach를 가졌던 독일교회와 한국교회의 다른 점은 제도적 차이, 그것이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이 글은 1981년에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와 연세대 종교음악과가 공동 주최한 교회음악세미나에서 행해진 강연내용으로서, 현 교회의 상황과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뜻이 지금의 교회현실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판단되어 약간의 수정을 거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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