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

≪기획특강시리즈≫

교회음악가의 직책문제 (II)

 

       홍정수 교수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중세 때의 음악인을 위한 일반적 명칭 칸토르 (Cantor)는 낮은 층의 음악인을 지칭했으며, 교회의 예식에 참여하며 더 우대받던 음악인에게도 역시 칸토레스 (Cantores)라는 약간 경멸적인 어투가 담긴 말로 칭했다. 이에 반하여 음악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무지쿠스 (Musikus)라고 불리웠는데 이와 같이 인정된 교회 음악가는 불과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음악가들이 점진적으로 이론에 익숙해지면서 Cantor per artem (예술적 Cantor)으로 명명되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을 보인 것은 종교개혁 후 독일에서 신교 교회학교의 음악교사로 일하게 되는 칸토르들로서 이들은 대학을 마치고 마기스터 (Magister:석사)의 칭호를 갖고 음악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가르쳤었고 교회와 도시 음악활동의 지도자들이었다.

이렇게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독일교회는 음악가의 임무를 성화 (聖化)시키는데 성공했고 교회 부속 학교는 교사직을 맡김으로 음악인의 지위를 다른 사회 지식계층과 동등하게 이끌어 올렸다. 그리하여 서양음악사에 있어 18세기까지는 교회음악가들의 활동으로 인해 교회 음악이 세속음악에 비해 월등한 비중을 갖고 있었다. 이 중 독일의 음악은 유럽 음악의 핵심이 되는 3국 (이태리, 독일, 불란서)중 가장 늦게, 즉 종교개혁 이후에 시작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나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루터교 (Luther)가 끼친 영향이 크다. 루터는 종교개혁자 중 가장 음악에 개방적이었으며 스스로 곡을 만들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는 교회음악에 금기조항을 파기하고 모든 것을 허용했다. 이와 비교하면 칼빈 (Calvin)은 교회에서 단성부의 멜로디만 허락하고 악기의 사용은 금했으며, 쯔빙글리 (Zwingli)는 모든 음악활동을 금하였다. 카톨릭 교회는 또한 당시 그레고리오 성가만을 음악의 표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모든 음악활동이 허용된 독일이 서양음악의 주도자가 된 것은 이 교회적 배경에 의한 것임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독일의 교회음악이 현재에 와서 음악사를 이끌어 가지는 못하였지만 아직도 유럽에서는 가장 탁월한 교회음악가들을 길러 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교회음악가를 위해 엄격한 교육울 실시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독일의 교회 음악학교는 주로 지방 교구 (Landes kirche)별로 주교의 소관 아래 있으며, 지방 정부와 교구가 합작 관리하는 일도 있다. 음악학교의 규모는 매우 적어 주로 30명 안팎의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고 학생 대부분이 기숙사에 입사해 있다. 베를린 (Berlin)교회 음악학교의 경우는 이 기숙사가 바로 강의실 위에 있고 각 방마다 피아노가 놓여 있어 기숙사 방은 거실이자 연습실이 되어 생활과 학업이 분리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교회음악학교에서 길러 내는 칸토르에게는 올갠연주와 합창 지휘의 능력을 갖추게 하는 집중적 교육이 실시된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의 교과목 (모든 음악 이론과 교리, 교회사 등)은 합창과 올갠 연주를 위해 보조적인 역할을 하며 이는 서로 분리되어 실행하지 않고 연결되어 종합적인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 학교를 졸업하는 데는 3가지방법이 있다. 즉, A-시험, B-시험, C-시험을 치루어 졸업하는 것이다. C-시험은 올갠이나 합창지휘 중 한 분야만 전공하여 치루게 되며 소요시간은 2년 반, 또는 3년 정도가 걸린다. 교육은 야간학교식으로 이루어져 직장을 가진 사람도 수학이 가능하다. 이들은 시험 후 부업으로 교회에 봉사하면서 자기의 직장을 그대로 갖게된다. B-시험은 보통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며, 그것도 한국에서처럼 시간이 찼다고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인정을 해야 시험을 볼 수 있다. B-음악가는 대개 일년에 2-3명 정도 한 학교에서 배출된다. 이들은 음악 전문가들로서 올갠연주에서 알아 볼 수 있다. 독일교회의 찬송가는 멜로디만 그려져 있으며 올갠 연주와 합창지휘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야 하며 이론적인 능력 역시 요청된다. 이론의 중요성은 그들의 올갠 연주에서 알아 볼 수 있다. 올갠 연주자는 각 절마다 항상 다르게 화성을 붙여 반주하는데 대개 각기 다른 시대적 양식을 따라 이루어진다. 거기에다 전주와 간주는 주어진 찬송가 멜로디의 변주곡이다. 이와 같은 변주곡은 대위론, 화성학, 반주기법을 즉석에서 동시에 생각하면서 연주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완벽한 즉석 연주를 위해서는 막대한 연습 후라야 가능하다. 합창지휘의 경우에 있어서, 맨 처음에는 매우 간단한 곡으로 시작되는데 실질적으로 합창을 지휘해 보면서 합창단을 위한 무리 없는 발성, 합창할 때의 지도력, 조직력 등을 연구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무리 어려운 합창곡일지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한다. 이러한 모든 요건이 충족되어야 B-시험을 치룰 자격이 생긴다. 시험 후 이들은 직업교회 음악가들로서 교회에 소속되어 음악 활동을 하며 개인적으로는 독주자 (주로 오르가니스트)로서 활약할 수 도 있으며 더러는 이론가들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 B-시험을 치룬 사람들을 두고 있다. A-시험은 매우 어려우며, 그 숫자 역시 비례적으로 매우 적다. A-음악가가 되려면 음악의 모든 면에서 탁월해야 하며 시험 때까지의 소요 시간 역시 일정한 기준을 잡기 어렵다. (모든 시험은 능력에 따라 빨리 또는 늦게 치룰 수도 있다.) 현재 독일에서의 A-음악가를 위한 자리는 열 군데 정도 밖에 없다. B와 A-음악가는 목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목사들과 같이 주택도 교회로부터 제공된다. A-음악가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B-음악가의 것보다 월등하게 많다. A와 B-음악가는 주로 올갠연주와 합창지휘를 하게 되며 한 달에 한번씩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를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이 밖에 아주 유능한 음악가는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교회음악만을 연주하여 일반 음악시장에서 연주가 (주로 바하, 헨델) 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독일의 교회 음악학교의 제도는 한국에서의 교회음악과 (또는 종교음악과)와 큰 차이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길고 수준 높은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학습이 요구되며, 재정적 압박이 심하지 않아 (독일은 학비가 없음) 장기적으로 공부함에 있어 학생들은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없고 교수들은 여기서 수준급 학생들만 졸업시킬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은 역사도 짧고 이렇다할 전통 (특히 작곡)을 쌓은 것이 없어 외국 곡들을 적당히 선택하여 배우는 실정이다. 또한 아직도 교회음악을 위한 특수 교과과정이 설정되지 않고 있어 실상 다른 음악과의 경우와 하등 다름이 없는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음악인의 직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학업이 끝난 후의 일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학과의 졸업생과 같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결과는 쉽게 말하여 질 수 있지만 사실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음악 하는 학생들의 심리적 입장에 서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음악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개 막연하나마 좋은 연주자가 되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 훌륭한 피아니스트, 좋은 성악가 또는 좀 더 진부한 표현을 빌면, "세계적 첼리스트", "명 바이올리니스트". 그러므로 우리의 음악교육은 소수의 좋은 연주자들을 길러 내긴 했으나 국경을 넘는 연주가, 즉 국제적 음악시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을 별로 길러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설사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국내에 음악시장이 없기 때문에 연주만으로는 생활이 곤란한 형편이다.(교향악단원과 직업합창단원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 "만약을 몰라"해 두었던 교직과목을 이수한 "죄"로 교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대학의 교육 또한 학교음악을 위한 전문적이고 특수한 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중·고교생을 위한 음악교육에 있어 교사, 학생 양측이 모두 흡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오는 것은 체념, 좌절이다. 음악을 시작하는 학생의 생각은 화려하고 그 종말은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 차갑고 어두운 방에 홀로 앉은 사람의 그것과 같아 스산하다. (이러한 심경은 metaphor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설사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고 돌아와 대학에서 교수를 한다 해도 "연주가의 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학교수들의 위로가 되는 것은 사회적 지위이지 연주 활동이 아니다. 음악인의 이러한 심리적 파산상태는 대학 음악교육의 이상의 "화려한 연주가"에 있고 실질적으로 부닥칠 음악교육의 문제는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수준의 연주가들의 잦은 연주여행 때문에 한국에서도 연주시장을 형성하려면 세계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비교적 짧은 시간으로는 힘든 일이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이 글은 1981년에 장로회 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와 연세대 종교음악과가 공동 주최한 교회음악세미나에서 행해진 강연내용으로서, 현 교회의 상황과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뜻이 지금의 교회현실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 판단되어 약간의 수정을 거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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