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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현대교회음악의 위험요소 III
하재은
연세대학교 작곡과 교수
III. 실용주의(實用主義)
음악사역의 근거로 사용되는 또 다른 철학은 실용주의이다. 실용주의의 근본 사상은 교회음악의 기준은 실용적인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좋은 교회음악은 음악이 하여야 할 일을 매우 효율적으로 감당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이 사상엔 기능이 전부이다. 음악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도구이다.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최우선의 결과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결과(목적)가 어떤 음악(방법)의 사용도 정당화시킨다. 예를 든다면, 윤리적인 면에서 거짓말, 속임수, 도둑질도 목적이 좋다면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의도된 결과가 칭찬 받을만 하다면 음악적 덕목이나 정체성, 진리의 문제를 도외시해도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작품기준의 실체가 없고, 작품의 종류나 분류는 필요없고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실용주의자는 음악 자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음악의 좋고 나쁨은 음악에 맡겨진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실용주의적 음악 지도자의 표어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사역의 근거로서 실용주의는 심미주의보다 별로 나을것이 없다. 첫째로 실용주의는 예배와 메시지, 즉 음악과 복음을 그릇되게 양분시킴으로 음악과 복음이 서로에 대한 배려없이 따로따로 겉돌게 만든다. 이와같은 수단과 목적의 분리는 복음적 증거를 위해 목적이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전제를 파괴시킨다. 통신의 방법, 의견교환의 방법이 통신이나 의견교환 내용에 의해 지배되어야 한다. 음악과 메시지는 유기적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용주의자는 음악과 복음이 상충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다. 실용주의자는 음악을 마치 메시지에 치는 윤활유나 감미료 또는 심리조정용처럼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 메시지에 상치되건 말건에 상관없이 음악이 메시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주고, 기분좋게 하여주며, 반응을 보이도록 하여 준다면 그 음악을 사용한다. 실용주의자는 상호교감에 대한 그의 관심 때문에 자신의 메시지를 팔기 위해 상업적인 음악 시스템의 사용을 마다하지 않음으로 복음을 약화시킨다. 복음의 정체성과 역동성이 상실되고 조작적인 판매기법이 성령의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실용주의는 객관적 기준을 없애버린다. 음악작품을 놓고 좋다 나쁘다 말하지 않는다. 작품의 좋음과 나쁨은 작품이 가져다주는 결과로서 결정된다. 가치관도 없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 이외엔 아무 기준도 없으며, 결과 이외엔 아무런 질적인 컨트롤도 없는 음악은 전혀 예술형식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음악은 그 정체성과 내재적 가치와 표현의 자유를 상실한다. 음악의 특징적 정체성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좀 심한 표현을 쓴다면 음악을 매춘화시키는 것이다. 실용주의는 기준도 없고 권위도 없으며 예언자적인 목적도 없는 어리석은 자의 세계관의 길을 따라갈 뿐이다. 셋째로, 실용주의는 철학적 자기 파괴의 경향을 보여준다. Elton Trueblood는 그의 저서 「왜곡된 세계」(The Bent World)에서 실용주의의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이 학자들이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에 파고 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p. 122)
실용주의의 결정적 오류는 실용주의 자체의 내부구조 허위성에 있다. 실용주의는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개념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에 상대적이라는 말인가? 실용주의는 "객관적 진리에 대해 상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용주의는 실용주의 자체를 준거(準據)의 중심에 놓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역사상 실용주의에 대한 훌륭한 비판자가 다음의 글에서 잘 지적해 주고 있다. Commanger 교수의 호소는 우리가 그 무엇에 순응하여야 한다는, 즉 실용주의 사고에 순응하여야 한다는 호소이다. '실용주의의 첫 번째 교훈은 절대적인 것을 저주하라!" 라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실용적 이상이 마치 절대적인 것 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절대적인 것을 저주하는 철학이 이상하게도 절대 철학으로 둔갑했다. 절대란 없다는 주장에서 새로운 절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분명히 혼란스럽게 만든다.
교회음악인들, 또는 교회지도자들이 그럴듯한 음악 철학을 만들어내는데 잘 이용하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근거는 빈약하다. 이들의 철학은 성서적 가르침으로부터 음악을 격리시키거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만들어 복음을 희석시킨다. 오히려 이러한 철학은 객관적인 음악기준의 결여로 절대적인 성경의 권위를 잠식하도록 만들거나 또는 잠식의 징후가 된다. 동시에 자체의 내부적 비일관성 때문에 스스로 파멸하게 된다. 심미주의와 실용주의는 완전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이행되지 않는다. 실용주의는 심미적인 면에서 음악적 질에 관해 동떨어지고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심미주의는 매우 비이상적 세계에서 실용적이 되어야 할 필요와 성공지향적이 되어야 할 필요에 대한 달갑지 않은 생각을 자주 실용적인 것에서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가치, 기준, 방향에서 일관성을 결여하는 것은 교회내에서 음악사역이 지향해야 할 모든 것을 방해 내지는 저지하는 철학적 불안정성을 야기시킨다.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일관성있고, 포괄적이며, 창의적 기본 철학이 없는 교회음악 프로그램은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바람에 휘둘릴 뿐이며 혼돈만이 있을 뿐이다. 《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이 글은 연세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주최한 '1999 추계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
